—인터뷰 바스통 기남해 바스통 대표 Q. 브랜드 ‘바스통’ 소개를 부탁드립니다.A. “바스통은 남성복 전문 브랜드로 올해로 11년이 됐습니다. 제대로 된 제품은 어디서나 통한다는 마음으로 옷을 만들고 있습니다.” Q. 11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인데요. 이제까지 생산한 옷은 몇 벌쯤 될까요?A. “총 생산 수량은 대략 7만 벌 가량 될 것 같아요. 반면에 디자인을 거쳐 제품으로 완성된 옷은 3백 개가 채 안 됩니다.” Q. 완성된 디자인이 3백 개라는 건 적은 숫자인가요?A. “그렇습니다. 보통 패션 브랜드는 시즌 당 1~2백 개를 디자인 하거든요. 시즌 단위는 6개월이고요. 그에 비하면 저희는 무척 적은 편이지요.” Q. 완성된 디자인이 적은 이유는 무얼까요? A. “일부러 적게 하는 건 아니고요.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성향 문제기도 하고요. 제가 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옷이 완성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완벽주의 성향 때문인지 저는 샘플로 만든 옷도 잘 안 입어요. 미완성이니까요. 하나의 제품이 잘 만들어져야 그 다음 제품도 잘 만들어지기 때문에 완성의 기준이 높은 편입니다.” Q. 바스통에는 단골 고객이 많지요? 30대 초반에 만난 고객이 아이의 아빠가 돼 옷을 사러 오고 그런 경험도 많을 듯합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A. “저희가 6개월에 한 번씩 프리뷰, 그러니까 시즌 미리보기 행사를 하거든요. 거의 동창회 수준입니다. 단골손님들이 계속 오는 것이죠. 연애 때 함께 찾던 손님들이 결혼해서 아이와 함께 옷을 사러 오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손님들을 보면 ”나도 열심히 살고 있으니 바스통 너희도 열심히 옷을 만들어줘“ 이렇게 느껴집니다. Q. 단골들은 계속해서 바스통 옷만 사나요?A. “그런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보통 3,4년에 걸쳐 저희 브랜드를 열심히 구매 해주세요. 그럼 옷장이 거의 채워지거든요. 그러다가 다른 브랜드도 사고 또 돌고 돌아 다시 저희 브랜드를 찾고 그래요. 오래 입은 바스통 옷에 정이 들었다며 매장에서 수선해 가는 모습을 보 면 뿌듯합니다.” Q. 패션쇼보다 지금 당장 입고 나갈 수 있는 옷을 지향한다는 것도 바스통만의 특징입니다. A. “제가 내성적이라 낯을 많이 가려요. 그러다보니 옷을 입고 누굴 만날 때 과한 느낌을 경계하거든요. 그럼에도 바스통 옷을 입는 저는 ‘동네 멋쟁이’로 불립니다. 동네 주민들이 제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하고요. 저희는 그게 어떤 자리건 옷을 입고 나갔을 때 누를 끼치지 않는 정중함을 추구합니다. 디자인 뿐 아니라 품질도 마찬가지고요. Q. 군복이나 워크 웨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디자인보다 과거의 유산을 선호하나요?A. “밀리터리를 자주 입거나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남성들이 입는 대부분의 옷들이 군복에서 유래됐거든요. 그래서 다큐도 많이 보고 관련된 영화도 많이 보고요. 이 옷이 어떻게 나오게 된 거지? 왜 이렇게 만든 거지? 이처럼 근본을 알기 위한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근본을 알아야 또 파생이 가능하니까요.” Q. 바스통의 시작은 왁스 자켓이었죠?A. “네 처음 바스통을 시작하고 2011년부터 4년 동안 7개의 왁스 자켓을 완성하기 위해 매달렸습니다. 미국 트레이드 쇼를 갔었는데 양말만 만드는 브랜드, 모자만 만드는 브랜드, 티셔츠만 만드는 브랜드. 이렇게 하나만 수 십 년 동안 파고든 브랜드들이 많았던 거죠. 아! 하나만 잘 만들면 멋지겠구나. 이런 생각으로 4년 동안 7개의 왁스 자켓만 만들었던 거죠.” Q. 그런데 토털 브랜드로 변화를 시도한 이유는 뭔가요?A.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외투만 판매해서는 생존이 어려웠습니다. 해외 주문은 한정적이었고요. 그래서 제가 만든 일곱 개의 외투에 잘 어울리는 이너웨어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만든 게 셔츠였고요. 계속해서 제품을 늘려가게 됐습니다.” Q. 매 시즌 룩북도 만들고 있습니다. 바스통에서 만든 옷들로만 화보를 만드는 건데. 이건 정말 대기업에서나 하는 일이잖아요. 돈도 많이 들고요. 이 작업을 꾸준히 하는 이유는 뭘까요?A. “저희는 이게 매 학기라고 생각을 해요. 반 년에 한 번씩 세상과 마주하는 우리의 모습은 이 정도의 근사함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용을 쓰더라도 이게 다 브랜드의 아카이브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1백 년 동안 이어지는 브랜드가 목표기 때문에 투자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아들에게 물려주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는데 아들은 옷에 관심이 없어서요. 바스통이 유럽에 진출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뒤 전문 경영자가 뒤를 잇는 게 제 꿈입니다.” Q. 바스통 대표이자 디자이너로 일하고 계신데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A. “새벽 6시 반에는 일터에 도착합니다. 아침에 업무 집중도가 좋아요. 그때 많은 일들을 처리합니다. 작은 브랜드로 시작했기 때문에 모든 일을 제가 하는 습관이 돼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직원도 많이 늘었고 당연히 분업을 이뤄나가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를 만드는 게 남은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Q. 대표님이 워낙 완벽주의자여서 직원들이 힘들어한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웃음)A.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완벽주의자니까요. 적당히 일하며 살고 싶은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고 제가 말을 하니까. 한번 사는 인생 잘 한다는 소리 듣고 살아야하지 않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후배들은 그런 얘기가 피곤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데 대강 하는 게 이해가 안가고 이해해 주고 싶지도 않거든요. 뭔가를 만든다면 최선을 추구하는 게 너무나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Q. 바스통에게 좋은 옷의 기준은 무엇인가요?A. “좋은 소재, 옷의 광택감, 밀도와 합사, 중력에 의한 찰랑거림을 꼽습니다.” Q. 밀도와 합사는 어떤 개념인가요?A. “원단을 태양에 비쳐봤을 때 밀도가 높은 게 있고 낮은 게 있어요. 합사는 실을 꼬은 횟수를 말하고요. 아무래도 여러 번 꼬면 원단이 더 탄탄합니다. 처음엔 밀도가 높고 여러 번 꼬아야 좋은 원단이라 생각했는데. 오래 일하다보니 옷에 어울리는 밀도와 합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그 옷과 어울리는 밀도와 합사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재료가 좋아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하고요.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비례를 잘 이뤄 디자인 하는 게 저의 일이라 생각합니다. 진짜 좋은 디자이너는 적당한 재료로도 그럴듯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저에게는 아직 그런 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 Q. 셔츠 칼라 각도나 칼라의 폭을 두고 고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안경 같이 작은 아이템이면 그 부분이 이해가 되는데 그래도 옷은 크기가 있는 제품이잖아요. 그럼에도 그렇게 작은 디테일에서 승부가 갈리기도 하나요?A. “네. 옷에는 각 부위마다 작은 요소들이 무척 많거든요. 그 작은 요소들의 합산으로 옷이란 하나의 결과가 나오는 거잖아요. 쉽게 말해 어떤 여성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나면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이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쌍꺼풀 2~3mm 가지고도 우리 인간은 다름을 인지합니다. 특히 심플한 옷을 만들 때는 그런 디테일이 더욱 도드라지고요. 덕지덕지한 디자인은 그런 게 상관없는 데 심플할수록 섬세함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심플함, 좋은 소재, 비율. 어렵고 티가 안 나지만 이런 요소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Q. 디자인을 마치고 마지막 단계에서 제품화를 포기한 경우도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성들여 만들었는데 포기할 때의 기분은 어떤가요? A. “직원들이 이건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다 얘기하는 제품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물론 저는 기분이 나쁩니다.(웃음) 하지만 직원들 다수가 아니라고 했을 때 그걸 고집하는 건 잘못 됐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아쉽지만 접습니다. 그런 논의의 과정이 저희 회사 직원들을 키우고 결국 회사가 성장하는 길이라 생각해요.” Q.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긴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제품을 여전히 신뢰하는 거군요?A. “그렇죠. 이것들 봐라. 나중에 보자. 이런 마음으로 하죠. (웃음) Q. 내 디자인이 동어반복을 하고 있다거나 나이가 들어가며 감각이 저하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요? A. “저한테는 새로운 데 다른 이들이 익숙한 것처럼 느꼈을 때 당황스럽습니다. 그럴 때마다 숙제가 늘어가는 느낌이에요. 감각이 저하되는 부분은, 왜 가수도 감각적인 히트 곡을 내고 오래 가는 분이 있고 비슷한 느낌의 노래를 조금씩 바꿔가며 오랫동안 하는 분들도 있잖아요. 저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반복하되 그 안에서 조금씩 업그레이드 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Q. ‘symbol of quality’가 브랜드를 상징하는 문구입니다. 부담스럽지 않나요? 퀄리티라는 게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나올 부분은 아닌 것 같아서요. 어떻습니까?A. “괜히 지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처음에 저희 내부에서 이 문구를 쓰자고 했을 때는 우리의 목표와 희망을 담은 문구였어요. 품질의 기준이 되어보자!이런 기준이요. 이제는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냥 즐기려고 합니다.” Q. 외국의 전통 있는 패션 브랜드를 보면 자체 공장 시설을 가지고 있잖아요. 바스통도 최근에 자체 공장 시설을 마련했는데요. 외주를 주는 것과 제품의 완성도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게 되는 건가요?A. “품질이 확실히 좋아집니다. 생산 시간도 단축되고요. 저는 공장 시설의 퀄리티를 신경 쓰는 편이에요. 최신식 기계가 필요하다고 하면 과감히 투자를 합니다. 사람이 잘하는 일과 기계가 잘하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서 품질을 좋게 하고 싶거든요. 현재 6~70% 정도 자체 생산을 소화하고 있고 궁극적으로 모든 제품을 자체 생산으로 소화하려 합니다.” Q. 품질은 좋지만 분명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요?A. “네. 쾌적하게 옷을 만드는 제조 환경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안정된 직장을 마련하면 자연스레 잘 될 거라 여겼고요.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모든 게 제 맘 같지는 않더라고요.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외주 생산의 경우 이런 어려움을 제가 떠안을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겠지요.” Q. 어릴 때는 화가가 꿈이었고 대학을 공대로 진학했다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패션 업계로 뛰어 들었고요. 대학교 그만두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인데요.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을 거고요.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는지요?A. “학점이 너무 안 나왔어요.(웃음) 공대와 너무 안 맞아서 대학생 때부터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요. 그래서 의류 매장을 운영했습니다. 어머님이 의류 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었고요.” Q. 처음에는 편집샵을 운영하다가 브랜드를 시작했습니다. 편집샵에서 느낀 한계가 있었을까요?A. “네 제가 파는 옷들이 성에 차질 않았어요. 왜 이렇게 밖에 못 만들 지라는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죠. 그때부터 공장을 다니며 옷을 만드는 방법들을 직접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Q. 패션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있었나요?A. “어릴 때 미술을 해서 아름다움의 세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베네통’과 ‘필라’ 이런 브랜드를 좋아했고요. ‘조르지오 알마니’나 ‘마르떼 프랑소와 저버’ 이런 옷들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집에서 무스탕을 안 사준다 해서 집을 나가겠다 협박을 한 적도 있고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좋은 옷을 입는 게 좋다기보다는 아름다운 제품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Q. 패션 시장을 잘 모르는 제가 보면 이런 생각도 듭니다. 좋은 재료로 잘 만들면 될 텐데 왜 그렇게 하는 브랜드는 많지 않은가? 아마 제가 모르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죠. 좋은 품질에 심혈을 기울이는 바스통과 같은 브랜드가 국내에 많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A.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서 그런 것 같아요. 똑똑하면 이 일을 안 하려고 할 것 같아요. 반복적으로 오래 해도 될까 말까인데 불확실성 속에서 이런 고생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쉽게 말해 고되니까 안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저도 힘들지만 새롭게 무언가를 만드는 게 제 적성에 맞으니까 재밋습니다.” Q. 옷을 만드는 마음이 궁금합니다. 새롭게 한 벌을 시작할 때 어떤 마음인지를 말로 표현해볼 수 있을까요?A. “설레죠. 이 소재를 써서 이런 실루엣이 완성되면 ‘세상이 바뀔 거야’라는 생각을 저는 많이 해요.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죠. 그럼에도 이 마음이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이잖아요. 소년 같은 마음입니다.” Q. 처음 생활명품 애에서 협업 제안을 했을 때 “어떤 비즈니스 모델인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고 했습니다. 처음 제안 받고 황당하셨겠어요?A. “그게 궁금했어요. 뭘 하자는 건지. 매장과 저희 홈페이지 말고 다른 통로를 통한 판매 이런 걸 전혀 몰랐으니까요. 저는 옷 만드는 일에만 집중하지 이게 어떤 루트로 세상에 전해지는 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반면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운명 같다는 생각이요. 주변에서 여성복을 하란 얘기를 정말 많이 했거든요. 하지만 그동안은 꼭 해야겠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요. 이번에는 운명 같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일종의 사인이고 신호다. 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해보자라는 생각이요.” Q. 여성 소비자를 만나는 건 처음인데요. 성별이 달라졌기에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까요?A. “항상 바스통에서 여성 손님들을 봐왔고 소통을 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는 돼 있었습니다. 과거에 여성 옷을 만들어본 경험도 있고요.” Q. 이번에 만든 셔츠를 소개해 준다면요?A. “좋은 소재를 사용했고요. 소재가 돋보이는 디자인으로 완성한 아름다운 셔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 될 수 없는.’ 셔츠라고 생각합니다.